틀릴 수조차 없는 가격 — 앵커를 잃을 때
너무 마음에 든 슬로건에서 시작했다. 제품도, 현금흐름도, 로드맵도 없는 밈코인이 일주일 만에 수십억 달러를 움직이는 것을 보며 나는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 “대조할 앵커가 없을 때,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전파력뿐이다. 크립토는 내러티브 경제학의 퇴화(degenerate) 사례이며, 펀더멘털이 없으니 이야기가 곧 펀더멘털이 된다.” 날카로워 보였다. 인용하고 싶은 형태였다. 그리고 앞으로 쓸 내용의 대부분은 그 한 문장을 스스로 해체하는 작업이다. 자세히 보니 절반은 옳고, 절반은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나 자신의 조잡함이었기 때문이다.
대립 구도는 시작하기도 전에 틀렸다
“이야기 대 펀더멘털”이라는 틀은 둘이 서로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전제한다 — 가격은 사실 실적(earnings)의 문제이고, 이야기는 그것을 밀어대는 잡음이라는 것. 그러나 오래된 세 가지 아이디어를 겹쳐 놓으면 그 전제는 무너진다.
먼저 케인스. 『일반이론』(1936) 12장에서 그는 주식시장을 신문의 미인 대회에 비유한다. 이기는 방법은 자신이 가장 예쁘다고 여기는 얼굴도, 남들이 가장 예쁘다고 여길 얼굴도 아니라, “평균적인 사람이 평균적인 의견이 어디에 안착하리라 예상하는가”를 예상하는 것이다.1 가격이란 타인의 믿음에 대한 고차(higher-order)의 믿음이다. 이것은 투기 거품의 병리가 아니라 모든 시장의 상태(常態)다. 펀더멘털이 가격을 직접 정하는 일은 결코 없다. 펀더멘털은 “사람들이, 남들이 그것에 대해 무엇을 믿는다고 믿는가”를 통해서만 시장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펀더멘털은 실제로 무엇을 하는가. 여기서 Matthew Shaffer의 연구가 내 사고를 벼려 주었다. 감사받은 회계 보고서는 셸링 포인트(Schelling point, 초점) 로 기능한다고 그는 논한다 — 모두가 독립적으로 같은 숫자를 계산할 수 있고, “남들도 이 숫자에 모일 것이라고 모두가 믿기에” 안정되는 초점이다. M&A나 파산처럼 다툼이 있는 평가의 장에서, 당사자들은 forward 지표가 더 정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trailing multiple에 끌려가며, 그 인력은 조정 문제가 가장 첨예한 곳에서 가장 강해진다고 그는 밝힌다.2 펀더멘털의 힘은 “그것이 가치다”라는 데 있지 않다. 누구나 외부에서 같은 앵커를 다시 계산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현기증을 일으키는 세 번째 단계 — 화폐 그 자체가 셸링 포인트다. Nick Szabo의 에세이 「Shelling Out」(2002)은 가치를 원시 화폐(조개 구슬, 희귀한 조각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들은 그가 말하는 위조 불가능한 비용(unforgeable costliness) 으로 가치를 유지했다 — 위조가 충분히 어렵기에 모두가 “남들도 계속 받아 줄 것”이라 믿을 수 있는 물건이다.3 내가 그것을 받는 이유는 남들도 받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작업증명(proof-of-work)은 바로 그 성질의 디지털 버전이다.
셋을 겹치면 깔끔한 대립은 녹아 버린다. 펀더멘털도 이야기도 같은 속(genus) 에 속한다 — 둘 다 고차의 믿음을 공유된 초점으로 묶는 장치다. 둘을 가르는 것은 오직 하나, 그 초점에 외부의 검증 앵커가 붙어 있는가 아닌가뿐이다.
이야기가 아니라 앵커가 문제다
이 재정식화가 본론의 전부다. DCF 모델은 감사 가능한 앵커가 달린 이야기다 — 가격은 틀릴 수 있지만, 실적이라는 외부 현실이 결국 믿음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다. 밈코인은 앵커가 잘려 나간 셸링 포인트다. 가격을 교정할 외부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 즉 엄밀히 말해 거기에는 “틀린 가격”이 없다. 가격이 참이어야 할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문장에서 경제학은 조용히 인식론이 된다. 시장 가격은 집약된 믿음이다. 앵커가 달린 시장에서 그 믿음은 묶여 있다 — 표류하지만, 외부 점검(분기 실적)이 되끌어당긴다. 밧줄을 끊으면, 가격을 움직이는 힘은 믿음의 전파(Shiller의 내러티브 역학)4 와 믿음의 자기실현(Soros의 재귀성 reflexivity — 어떤 것을 믿음으로써 그것이 더 참이 되고, 그것이 다시 믿음을 강화한다)5 뿐이다. 진리값이라는 항이 방정식에서 통째로 사라진다. 이것은 “참·거짓을 검증할 수 없다”가 아니다. “검증할 사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더 기묘한 상태다. 정보 무결성 문제를 퇴화적 극한까지 밀고 간 모습이다.
내 슬로건을 쏜다
재정식화의 핵심은 살아남는다. 그러나 원래의 한 문장 — 전파력만이 가치를 결정한다 — 는 살아남지 못한다. 이 점은 명시할 가치가 있다. 내러티브 경제학은 “결코 반증할 수 없는 주장을 한다”는 악덕으로 악명 높기 때문이다.6 세 가지 증거가 강한 형태를 죽인다.
첫째, 인과는 양방향으로 흐른다. SNS의 화제와 자산 가격을 조사한 연구들은 둘이 서로를 그레인저-인과(Granger-cause)한다고 밝힌다. 화살표는 이야기→가격이 아니라 루프다.7 이것은 재귀성이지 내러티브 결정론이 아니다. “전파력만”은 데이터가 거부하는 일방향 화살표를 밀수한다.
둘째, 동일한 이야기가 동일한 가치를 낳지 않는다. 비트코인의 포크 — 비트코인 캐시, 비트코인 SV — 는 기술도 기원 이야기도 거의 같은 것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2026년 중반 시점에,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이 조 달러 규모인 데 반해 포크들은 시장 전체의 몇 분의 일 퍼센트에 가라앉아 있다.8 이야기가 모든 일을 한다면 거의 복제본은 거의 동등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것은 비(非)내러티브 앵커가 실재하기 때문이다 — 현저성(salience), 혹은 린디(Lindy) 효과. 가장 오래 초점이었던 점이 가장 안정된 초점이 된다. 오래되었다는 것 자체가 앵커다.
셋째, 시장이 지금 이 순간 자신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보라. 2026년의 큰 합의는 “크립토가 성숙했다”이다 — “투기보다 실체(substance over speculation)”, 비트코인은 매크로 앵커, 이더리움은 실제 수수료 수익을 갖춘 생산적인 디지털 자본이라는 것.9 그러나 그 담론이 무엇인지 주목하라. 그것은 “이야기 주도 가격 형성의 끝”을 알리는 이야기다. 그리고 배치되는 이유는 바로 “이제 펀더멘털이 있다”가 다음 기관 자본을 조정하는 가장 효과적인 초점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에서 벗어난다는 이야기조차 하나의 셸링 포인트다.
그러므로 정직한 결론은 “이야기=가치”가 아니다. 더 작고, 아마도 더 참이다 — 외부 앵커를 잃어도 이야기가 전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사라지는 것은 오류를 교정하는 기구 쪽이다. 이야기는 여전히 현저성과 재귀성에 묶여 있다. 사라지는 것은 가격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 쪽이다. 퇴화란 이야기의 승리가 아니다. 교정 루프의 삭제다.
아직 모르는 것
이더리움의 fee-burn은 진짜 현금흐름 앵커인가, 아니면 더 세련된 초점 이야기에 불과한가. 여기에는 깔끔한 실증 테스트가 숨어 있다 — 자산에 커다란 내러티브 충격을 가하고, 가격이 어떤 현금흐름 가치로 되돌아오는지 아니면 그저 새로운 초점으로 표류하는지를 본다. 되돌아온다면 앵커는 진짜이고, 이더리움은 퇴화 영역을 벗어난 것이 된다. 나는 아직 어느 쪽으로 굴러갈지 모른다.
현저성은 정량화할 수 있는가 — “초점이었던 기간”을 가격 안정성에 대해, 포크 무리를 대조군으로 삼아 측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가장 불편한 물음 — 만약 “성숙” 이야기가 자기실현한다면(기관 자본이 들어오고, 실수요가 자라고, 정말로 앵커가 형성된다면), 앵커는 이야기에 의해 길러진다는 뜻이 된다. 초점이 먼저이고, 펀더멘털이 나중에 쌓인다. 이것은 Szabo 자신의 “수집품이 서서히 화폐로 굳어진다”는 서술과 섬뜩하리만치 잘 운을 맞춘다. 앵커는 애초의 조건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나중에 쟁취하는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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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pedia. “Keynesian beauty contest,” J.M. Keynes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6) 12장 요약. Accessed 2026-0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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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ffer, Matthew. “Contentious Valuations: Accounting Reports as Schelling Points.” SSRN working paper. Accessed 2026-0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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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zabo, Nick. “Shelling Out: The Origins of Money” (2002). Accessed 2026-0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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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ller, Robert J. “Narrative Economics.” AEA Presidential Address, American Economic Review 107(4), 2017. Accessed 2026-0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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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teTree. “Reflexivity: Nothing Does It Like Bitcoin” (2021), George Soros의 재귀성 이론에 관하여. Accessed 2026-0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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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o Institute. “Narrative Economics,” Regulation (Winter 2019–2020) — 프레임워크의 반증 가능성에 대한 비판. Accessed 2026-0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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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lam et al. / npj Complexity. “Bidirectional Granger causality between social-media narratives and asset prices,” npj Complexity (2025). Accessed 2026-0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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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inMarketCap. “Bitcoin Dominance” 및 Bitcoin / Bitcoin Cash / Bitcoin SV 시가총액(2026-07-07 기준). Accessed 2026-0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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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inmonks. “Crypto Narratives 2025–2026: Substance over Speculation.” Accessed 2026-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