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잃어버린 수십 년’에 대해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생산성이 오르지 않았으니 임금도 정체됐다는 이야기다. 깔끔한 서사지만, 틀렸거나 적어도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다. 이번 달 발표된 일본은행 워킹페이퍼1는 수십 년치 근로자 단위 미시데이터를 다시 파헤쳐, 디플레이션 시기 내내 일본 기업들의 생산성은 실제로 계속 올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장 난 건 엔진이 아니었다. 생산성 증가분을 월급으로 옮겨야 했던 전달 장치 쪽이었다.

이유가 사라진 뒤에도 남은 동결

이 논문이 제시하는 메커니즘은 놀랍도록 평범한데, 오히려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디플레이션 시기 일본 기업들은 “나중에 명목임금을 못 내리면 곤란하다”는 예상 때문에, 지금 당장의 임금 인상 자체를 자제했다. 좋은 해에 올렸다가 나쁜 해에 못 내리는 상황에 갇히느니, 애초에 손대지 않는 편이 낫다는 논리다. 이건 교과서적인 ‘명목임금 하방경직성’ 이야기지만, 이 논문의 핵심은 그 경직성이 지속적인 디플레이션과 충돌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 데 있다. 하방경직성은 단순히 임금 삭감을 막는 데 그치지 않고, 언젠가 철회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임금 인상 자체까지 억누르기 시작한다.

논문에 따르면 이런 종류의 상방경직성에 직면한 근로자 비율은 1990년대 초 1% 미만이었다가 2000년대 초에는 약 7%까지 올랐다. 보통의 인플레이션 환경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아야 할 메커니즘치고는 큰 도약이다. 물가가 2%로 돌아가고 있다면 명목임금을 그냥 동결하는 것만으로도 실질임금을 조용히 깎을 수 있다 — 충돌 없는 탈출구가 있는 셈이다. 디플레이션 아래에서는 그 탈출구가 막힌다. 명목임금이 유일한 지렛대가 되고, 그걸 언젠가 내려야 할까 봐 두려운 기업은 아예 그 지렛대를 건드리지 않는다.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문제

표제가 된 발견보다 더 흥미로웠던 건 그다음 대목이다. 이 논문은 “임금이 올라야 했던 만큼 오르지 않았다”에서 멈추지 않는다. 임금 동결이 또 다른 피해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 생산성이 높은 기업으로 노동자를 이동시켜야 할 신호를 무디게 만든 피해다. 기업의 실제 생산성과 무관하게 모두가 비슷한 명목 수준에서 얼어붙어 있다면, 임금은 더 이상 “이 회사가 실제로 얼마나 잘하고 있는가”를 반영하지 못한다. 노동자가 이직 여부를 판단할 핵심 정보가 사라지는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상대임금에 대한 자발적 이직(job-to-job) 탄력성은 1997년 약 1.6에서 2003년 약 1.4로 떨어졌고, 논문이 다루는 가장 최근 데이터 시점까지도 회복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숫자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일본의 인플레이션율은 최근 몇 년간 2% 안팎이거나 그 이상으로 유지되고 있다. 동결을 일으켰던 “올리면 못 내린다”는 예방적 논리는, 그 두려움을 합리화했던 디플레이션이라는 배경이 사라진 지금 힘을 잃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논문의 반사실적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디플레이션 이전의 임금 설정 관행을 회복할 경우 실질임금은 약 10%, 총생산성은 0.75% 가까이 오를 것으로 나오는데도, 인플레이션이 돌아온 지금까지 그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물가 환경은 몇 년 전에 이미 치유됐다. 그것이 만들어낸 행동 규범 쪽은, 아직 치유되지 않은 듯하다.

두 가지 종류의 ‘멈춤’

이 논문을 곱씹을 가치가 있게 만드는 건, 보통 하나로 뭉뚱그려 이야기되는 두 가지를 갈라놓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 외부 조건(디플레이션)과 그것이 만들어낸 내부 습관(임금 인상을 언젠가 후회할 약속처럼 다루는 것). 조건은 통화정책이 정한 일정에 따라 끝날 수 있다. 습관에는 일정이 없다. 인사팀이 예산을 짜는 방식, 노조가 협상하는 방식, 노동자 스스로 ‘합리적인 요구’가 무엇인지 가늠하는 방식 속에 이미 박혀버렸기 때문에 계속된다. 아무도 디플레이션이 다시 온다고 계속 믿을 필요가 없다 — 그저 모두가 지금도 기본값으로 그렇게 행동하고 있으면 될 뿐이다.

이건 어떤 조직이 특정 정책을 졸업하고 나서도 반사작용만 남아있는 걸 본 적 있는 사람에게는 익숙한 모양이다. 채용 동결이 풀려도 인력 요청은 ‘동결 시기의 계획법’ 그대로 앞으로 2년쯤 더 보수적으로 유지된다. 안전 사고 하나가 심사 절차를 만들고, 왜 그게 존재하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은 후에도 그 절차만 살아남는다. 흥미로운 건 “원래 원인이 사라졌는가”가 아니다 — 대개는 아무도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사라져 있다. 흥미로운 건 그걸 다시 점검하게 만드는 계기가 존재하는가다. 임금 설정이 수천 개의 개별 기업에 분산되어 있고, 각자가 그저 ‘작년에 통했던 방식’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라면, “잠깐, 이거 아직도 진짜 맞는 얘기야?”라고 물을 순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논문이 일본 사례에서 그 재점검을 무엇이 촉발할지까지 답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그럴 의도도 아니었을 것이다 — 이건 진단을 위한 논문이지 정책 제안 논문이 아니다. 그래도 진단 자체는 이례적으로 날카로운 형태로 남는다. 고쳐야 할 건 정책이 직접 움직일 수 있는 숫자(인플레이션율, 생산성)가 아니다. 어떤 숫자가 10년 지속되면서 만들어진 행동적 균형이며, 그 숫자가 몇 년간 교정됐다고 해서 아직 풀리지 않은 균형이라는 것이다.

열려 있는 질문

내가 아직 확신을 갖지 못한 건 이게 얼마나 일반화될 수 있는가다. 하방임금경직성은 일본 밖에서도 잘 기록된 현상이지만, “탄력성이 회복되지 않는다”는 발견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 충분히 긴 디플레이션 시기는 노동시장이 사람에게 값을 매기는 방식뿐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배치하는지에까지 오래가는 상처를 남길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게 맞다면,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중앙은행의 임무는 물가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디플레이션을 버티기 위해 만들어진 습관이 인플레이션만으로는 녹일 수 없는 무언가로 굳어지기 전에, 물가를 완전히 움직여내는 것이다. 그게 이 논문의 데이터가 시사하듯 몇 년 단위의 문제인지, 아니면 인플레이션이 돌아온 뒤 충분한 시간이 지나 너무 오래 눌러앉아 있다가 손해 보는 이직자들이 늘어나면서 기업과 노동자 스스로 자연스럽게 교정해나갈 문제인지는, 아직 데이터가 답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인플레이션이 돌아온 뒤로 그걸 구분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1. 일본은행 리서치랩, “What Prevents Productivity Gains from Translating into Wages: Lessons from Japan’s Deflationary Period,” BOJ Working Paper No. 26-E-12 (2026-08-14). 2026-08-20 접속. ↩